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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대륙에서 온 신의 혜택, 감자
독일의 작가 괴테는 ‘신대륙에서 온 것 중 악마의 저주와 신
의 혜택이 있는데 전자는 담배요, 후자는 감자’라고 했다. 서
양인들이 즐겨 먹던 감자가 우리나라에 등장한 것은 1832
년 독일의 구츠라프라는 선교사에 의해서다. 그러나 조선은
외국 작물은 국법으로 금하여 모조리 뽑아버렸고 이후 사람
들은 몰래 재배하기 시작했다. 조선시대 학자 이규경이 저술 앙투안 오귀스텡 파르망티에
한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는 청나라 감자를 터부시하던 귀족, 왕족들에게 감자의 중요성을 알린 이가 루
이 15세의 신하이자 학자였던 앙투안 오귀스텡 파르망티에다. 그는
사람들이 산삼을 캐기 위해 숨어들어와 감자를 몰래 식량으
감자가 영양학적으로 얼마나 우수한지를 알리는데 일생을 바쳤다.
로 경작한 것이 시초라고 전한다. 그의 노력은 결국 프랑스의 감자 역사를 다시 쓰게 만들었다.
감자의 원산지는 남아메리카 안데스산맥이다. 약 7000년
전, 페루 남부에서 재배되기 시작해 16세기 스페인의 식민
지배를 받으면서 전 세계로 퍼졌다. 감자의 어원은 ‘북방에
서 온 고구마’라는 뜻의 북방감저(北方甘藷)에서 유래되었
다. 감자의 영어 이름인 포테이토(Potato)의 어원도 고구마를
벗어날 수 없다. 고대 페루에서는 감자를 파파(Papa)라고 불
렀다. 감자가 유럽으로 전해지면서 파파가 파타타(Patata)로
불리게 되었다. 이렇듯 이름이 파타타로 바뀌게 된 것은 유
럽인들이 캐러비안 지역에서 가져간 바타타(Batata, 고구마)
와 비슷한 감자를 파타타라고 불렀기 때문이다. 이 파타타가
지금의 포테이토란 이름으로 정착했다.
세계 전쟁에서 가치를 드러낸 감자 1789년부터 1814년까지 나폴레옹 전쟁 시절, 나폴레옹의
대부분의 전쟁이 알고 보면 잘 먹고 잘 살자고 일어난다. 식 대륙봉쇄령 여파로 많은 영국인이 굶주림에 시달렸다. 특히 예술 작품 속 감자 이야기
빈센트 반 고흐 ‘감자를 먹는 사람들’
량을 확보하기 위해 일어난 크고 작은 전쟁들은 말할 것도 빵의 재료인 밀의 가격은 전쟁이 지속될수록 천정부지로 올 전 세계인의 주식이요, 간식인 감자는 예술 속으로 들어와
없다. 랐다. 밀을 먹을 수 없게 되자 영국인들은 감자로 눈을 돌렸 문화의 꽃을 피운다. 가난한 사람들을 구원하는 식품이기도
1756년부터 1763년까지 프러시아와 오스트리아 전쟁은 ‘감 다. 당시 영국인들은 감자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전쟁 했던 감자는 특히 빈센트 반 고흐의 ‘감자를 먹는 사람들’, 밀 들에게 감자의 중요성을 알린 이가 바로 프랑스의 감자 전도
자 전쟁’으로 유명하다. 당시 프러시아의 프리드리히 대왕은 을 겪으면서 가격이 싸고 영양가도 높은 감자를 받아들이기 레의 ‘감자 심는 사람들’, ‘만종’, 앨런의 ‘감자 줍는 사람들’에 사, 루이 15세의 신하이자 학자였던 앙투안 오귀스텡 파르망
감자의 효용 가치를 알고 농가마다 감자를 심게 했고, 자신 시작했다. 이때부터 감자가 영국의 주요 주식으로 자리 잡게 서 그 빛을 발한다. 구황작물인 감자는 국내 작품에도 시대 티에(Antonic Augustine Permentire)다. 그는 감자가 영양학적
도 감자를 주식으로 삼는 등 감자 생산을 장려했다. 식량난 되었다. 상황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김동인의 소설 <감자>, 권태웅 으로 얼마나 우수한지를 알리는 데 일생을 바쳤다. 그의 노
을 극복하여 부국강병을 꾀하려는 노력이었다. 그는 7년 전 가장 많은 사상자를 낸 2차 대전 때도 감자는 귀중한 전쟁 의 동요 ‘감자꽃’ 등이 대표적이며 안수길의 장편소설 <북간 력은 결국 프랑스의 감자 역사를 다시 쓰게 만들었고, 그의
쟁에서 식량 부족과 오스트리아군의 군사력에 밀려 지구전 식량 역할을 했다. 미국 병사들은 독일 병사들의 식량원이었 도>에도 감자 이야기가 나온다. 소설이나 동요에서 감자는 이름을 딴 프랑스 대표 음식 ‘파르망티에’로 그는 음식 예술
으로 대처했다. 끈질기게 버텼지만 프러시아의 상황은 최악 던 감자밭을 습격해 초토화하는 작전으로 전쟁을 빨리 끝낼 일제강점기의 비참한 조선 민중의 생활상과 함께 조국 독립 사에 남게 된다. 감자의 아름다운 푸른 꽃은 프랑스 마리 앙
이라 할 만큼 불리했다. 하지만 적의 주요 식량인 감자를 차 수 있었다. 이를 두고 일부 학자들은 독일의 패망 원인 중 하 에 대한 염원으로 그려진다. 투와네트 왕비가 머리 장식용으로 애용했다. 땅속의 사과,
단해 병사들을 굶주리게 하는 작전으로 기적적으로 승리할 나가 감자라고 주장했다. 감자 요리를 예술로 바꾼 프랑스에도 한때 감자를 그저 서 감자 한 알의 숨어 있는 힘은 이렇게 역사를 재조명하고 인
수 있었다. 오스트리아군은 식량이 떨어져 더 이상 전쟁을 어디까지가 진실인지는 모르겠으나 분명한 것은 중요한 식 민들이 어쩔 수 없이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천한 음식이라 류를 구원했으며 지금도 우리 식탁에서 담백하고 깊이 있는
할 수 없게 되었고 결국 전쟁을 포기했다. 량 가치와 전쟁 속에서 감자가 핵(核)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고 치부하던 시절이 있었다. 감자를 터부시하던 귀족, 왕족 맛을 뽐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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